도입부 왜 지금 이 이슈를 이야기해야 하는
산책하다가,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혹은 그냥 길을 걷다가 누군가에게 갑자기 공격을 당한다면 어떨까요. 최근 청주에서는 산책 중이던 여성을 향해 금속 촉이 달린 화살이 날아드는 사건이 벌어졌고, 지난해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아동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 사회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원한도 없는 이런 범죄들을 우리는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한두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사람들은 “혹시 나도 당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은 대중교통, 골목길, 심지어 익숙한 동네 산책로에까지 스며듭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범죄 예방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시민들의 두려움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문제를 정면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슈란 무엇인가 정의와 개념 정리
묻지마 범죄는 학술적으로는 ‘이상 동기 범죄’ 혹은 ‘동기 없는 범죄’라고도 불립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개인적인 원한이나 이해관계가 전혀 없고, 피해자가 단순히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행 대상이 되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동기가 아예 없다’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사건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고립, 정신질환, 경제적 좌절, 누적된 분노 같은 나름의 배경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동기가 피해자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범죄처럼 원인과 대상을 명확히 연결 짓기 어려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경찰과 학계에서는 최근 ‘묻지마 범죄’라는 자극적인 표현 대신 ‘이상 동기 범죄’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나 발생 배경
이상 동기 범죄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요인이 겹쳐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적 고립입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지역 공동체의 유대가 약해지면서, 어려움을 겪어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고립이 장기화하면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나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둘째는 정신건강 관리의 공백입니다.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거나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로 직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적절한 치료와 관리 체계가 부족할 경우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고 있습니다.
셋째는 경제적·사회적 좌절감의 누적입니다. 취업난, 빈부격차,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쌓이면서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나 냉소가 커지고, 이것이 일부 극단적인 개인에게서 무차별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현재 실태
이상 동기 범죄는 통계로 정확히 잡아내기 까다로운 유형입니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할 때 ‘동기’를 분류하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배경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되는 관련 사건의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은 여러 조사 기관과 경찰 내부에서도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최근 사례들의 특징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번화가, 지하철역, 주택가 골목, 심지어 학교처럼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공간에서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청은 2026년 치안 정책의 핵심 과제로 이상 동기 범죄 대응을 명시하고, 순찰 강화와 첨단 CCTV 확충 등 물리적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상 동기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실제 피해 규모를 넘어섭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심리적 안전감’의 붕괴입니다. 통계적으로는 특정 개인이 이런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 행동을 바꿔놓습니다. 밤늦게 다니는 길을 바꾸거나, 이어폰을 빼고 걷거나,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식의 크고 작은 변화가 그 예입니다.
또한 사회적 신뢰의 저하로도 이어집니다. 이웃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공동체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줄어들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정신질환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편견을 키울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일부 사건이 부각되면서 정신질환 자체를 위험 요소로 낙인찍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는 정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해외 사례
이상 동기 범죄, 혹은 이와 유사한 ‘무차별 공격형 범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유형의 사건을 ‘도리마(通り魔, 지나가던 마귀)!’다 부르며 오래전부터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사건 발생 시 심리 전문가를 즉각 투입하는 위기 개입 체계를 갖추고, 지자체 차원에서 고립된 시민을 발굴해 지원하는 ‘현장 봉사’ 사업을 확대해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한 무차별 폭력이 총기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아, 각 주마다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레드플래그 법’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사회 기반 위기 대응팀을 통해 정신건강 위기 상황을 조기에 포착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정신건강 서비스와 경찰이 협업하는 ‘거리 트라이 애지’ 제도를 통해, 위기 상황에 놓인 시민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대상으로 우선 접근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국가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처벌 강화’만으로는 이런 유형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해결 방안
이상 동기 범죄는 단일한 원인에서 비롯되지 않는 만큼, 해법 역시 여러 층위에서 함께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먼저 예방적 차원에서는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치료가 중단된 고위험군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정신건강 상담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동시에 사회적 고립을 줄이기 위한 지역 공동체 회복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물리적 안전 인프라 측면에서는 CCTV 확충과 순찰 강화 같은 전통적인 치안 대책과 함께,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처럼 공간 자체를 안전하게 설계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자치경찰제 역시 지역 사정에 맞는 촘촘한 생활 치안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기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는 대응 체계 구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개입하는 조기경보 시스템, 그리고 사건 이후 피해자와 지역 주민의 트라우마를 돌보는 심리 지원 체계까지 함께 갖춰져야 근본적인 해법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핵심 요약
정의: 묻지마 범죄(이상 동기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개인적 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배경: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 관리 공백, 경제·사회적 좌절감의 누적
현재 실태: 장소를 가리지 않는 발생 양상, 시민 불안 확산, 경찰청 2026년 핵심 치안 과제로 지정
사회적 영향: 심리적 안전감 붕괴, 공동체 신뢰 저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심화 우려
해외 사례: 일본의 위기 개입 체계, 미국의 레드플래그 법, 영국의 거리 트라이 애지
해결 방향: 정신건강 관리 강화, 공동체 회복, 환경 설계형 치안, 조기경보 및 심리 지원 체계 구축
마무리 결론 및 시사점
이상 동기 범죄는 단순히 ‘이상한 사람’의 돌발 행동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사회적 고립, 관리되지 못한 정신건강 문제, 누적된 좌절감처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구조적인 과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유형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 국내외 여러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위기에 놓인 사람을 사회가 얼마나 일찍 발견하고, 얼마나 촘촘하게 도울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순찰과 CCTV 같은 물리적 대책과 함께, 정신건강 지원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두 축이 함께 움직여야 시민들이 다시 일상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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