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마주치는 전기차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정부 보조금과 완성차 업체들의 마케팅은 한결같이 전기차를 ‘탄소중립 시대의 해답’으로 소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공식에 물음표를 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광물을 캐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염, 그리고 전기를 만드는 발전원 자체가 여전히 석탄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차가 친환경적인지 아닌지를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운행 중에는 확실히 배출가스가 없지만, 자동차 한 대가 태어나서 폐차되기까지 전체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감정적인 찬반 논쟁이 아니라, 데이터를 어디까지 들여다보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이 이슈란 무엇인가, 전과정평가라는 개념부터
전기차의 친환경성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는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라는 개념이 있다. 자동차가 원료 채굴 단계부터 부품 제조, 운행, 폐차와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체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모두 합산해서 비교하는 방식이다.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부터 폐차가 되는 순간까지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모두 계산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의 분석으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생산 과정에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주행 중 배출가스가 없으니 친환경’이라고 말하는 것과, 생산과 폐기까지 포함해 계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국내외 정책 논의가 이 전과정평가 방식을 자동차 환경 규제에 도입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이런 논쟁이 생겼나, 배터리라는 변수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배터리다. 배터리를 만들려면 리튬, 니켈, 코발트 같은 광물을 채굴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상당한 에너지와 화학물질이 필요하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는 데는 많은 양의 오염 물질이 발생하고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이 광물 수요도 함께 폭증했다. 실제로 관련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17년에는 전 세계 리튬 수요의 약 15%만이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했지만, 2022년에는 그 비중이 약 60%까지 크게 늘었다. 배터리 수요가 늘어난 만큼 채굴 현장의 환경 부담도 함께 커진 셈이다.
여기에 배터리를 다 쓴 뒤의 문제도 있다. 국내 폐배터리 발생량은 2020년 약 4,700개 수준에서 2025년에는 1만 3,000개, 2030년에는 8만 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폐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환경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숫자로 보는 현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을 직접 비교한 조사 결과도 있다. 한 완성차 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동차 한 대당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은 70킬로와트시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대략 20~25톤, 내연기관차는 10~12톤 정도로 나타났다. 생산 단계만 놓고 보면 전기차 쪽이 오히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기차는 일정 거리를 주행하고 나면 운행 중 배출량이 거의 없다는 강점으로 생산 단계의 격차를 점차 메워간다. 문제는 이 격차를 메우는 속도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미국, 중국, 인도처럼 석탄 발전 비중이 높은 나라는 프랑스나 노르웨이처럼 원자력이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나라에 비해 전기차의 전주기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시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화석연료로 채우고 있는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 전기차를 완전한 친환경 차로 부르기에는 아직 애매한 지점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 논쟁은 단순히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 소비자로서는 ‘전기차를 사면 무조건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재검토할 필요가 생긴다. 전기차 보급 확대가 실질적인 탄소 감축으로 이어지려면 발전원 구성, 즉 전기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함께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체들에 새로운 과제가 던져진다. 단순히 전기차를 많이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배터리 생산 과정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체계까지 갖춰야 진짜 친환경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고된다. 자동차의 환경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주행 중 배출가스 유무’에서 ‘생애주기 전체 탄소 배출량’으로 옮겨가면, 보조금 지급 기준이나 환경 규제의 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소비자가 차를 고르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유럽연합은 이 문제에 가장 앞서 대응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EU는 시장에 출시되는 전기차 배터리를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선언서 제출과 등급 라벨 부착, 최대 배출 한도 준수, 디지털 배터리 여권 공개 등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배터리를 만들 때 원료 채굴부터 재활용까지 전 과정에서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측면에서도 유럽의 배터리 규정은 새로운 배터리를 만들 때 재활용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아직 실제 재활용량은 낮은 수준이고, 배터리 화학 물질과 재활용 기술, 시장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서 관련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우리나라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국제표준화기구의 폐배터리 관련 국제표준 논의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배터리 관리 정책과 산업 현황을 정리한 기술 자료집을 발간했다. 배터리를 재조립해 다시 쓰거나 에너지저장장치 등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고, 최종적으로 원료물질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체계를 갖추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기 생산 자체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 차가 되려면 그 전기를 만드는 발전원이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같은 저탄소 에너지로 바뀌어야 한다. 발전원이 바뀌지 않은 채 전기차 대수만 늘어나면 탄소 감축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배터리 생산과 폐기 전 과정을 관리하는 체계를 촘촘하게 만드는 일이다. 광물 채굴 단계의 환경 기준을 강화하고, 폐배터리를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는 산업을 키워서 배터리 한 개가 만들어지고 버려지기까지 전체 탄소발자국을 줄여나가야 한다.
셋째, 소비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전과정평가 방식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조금이나 규제 기준을 설계하면 소비자도 막연한 이미지가 아니라 근거를 갖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한눈에 보는 핵심 요약
전기차는 운행 중 배출가스가 없지만, 생산 단계에서는 배터리 제조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의 친환경성을 판단할 때는 원료 채굴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따지는 전과정평가 방식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전기차의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는 그 나라의 발전원 구성에 크게 좌우된다
배터리 원료 채굴과 폐배터리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도 함께 관리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유럽연합은 배터리 탄소발자국 공개와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등 관련 제도를 앞서 도입하고 있다
마무리, 이분법을 넘어선 질문이 필요하다
전기차가 친환경이냐 아니냐를 예, ‘아니요.’로 답하기는 어렵다. 운행 단계만 보면 분명한 강점이 있지만, 생산과 폐기까지 포함하면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기차 자체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원을 어떻게 바꾸고 배터리를 어떻게 만들고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다.
전기차 보급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 흐름 속에서 소비자는 조금 더 꼼꼼한 기준으로 차를 고르고, 정책은 생애주기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전기차가 이름값에 걸맞은 친환경 차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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